커누스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서 강의실로 갈 시간이었다. 책상 한편에 챙겨 놓은 자료들을 집어 든 그는, 빠진 것은 없는지 다시 확인해보았다. 종이 서류철에 모아 놓은 논문 사본과 서신 사본들은 멀게는 30년도 더 지난 것들이었다. 타이프라이터로 작성한 편지들을 보니 지나간 시간이 느껴졌다. 20대 후반의 혈기 왕성했던 그가 그 속에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였던 로버트 플로이드의 유쾌한 음성도 들려왔다.
플로이드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야속한 사람…’ 순간 커누스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면서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나 영민하던 사람이 그런 모습으로 떠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하필이면 그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하늘도 무심했다. 뇌의 기능이 서서히 상실되는 병이라니. 1994년에 은퇴할 때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지적 활동을 활발히 했던 그가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얼마나 큰 충격과 절망감을 느꼈을지 커누스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흐릿해진 시야 저편으로 40년 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시라쿠스에서 열린 학회에서 플로이드와 처음 만났다. 이미 논문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터라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커누스는 수학 석사 학위를 밟고 있었고 플로이드는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사의 수석 연구원으로 막 옮긴 후였다. 플로이드는 커누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플로이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누스는 수학자의 길을 갈 생각이었고 소프트웨어는 일종의 취미활동이자 부수입을 위한 과외활동이었다. 하지만 플로이드와의 만남에서 커누스는 컴퓨터 연구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첫 만남 이후에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커누스는 미국의 서쪽 끝에 살고 있었고 플로이드는 동쪽 끝에 살고 있었지만 그런 물리적인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번은 동부 해안에서 잡은 바닷가재를 잔뜩 들고서 플로이드가 커누스를 찾아오기도 했고, 두 사람은 등산과 캠핑을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커누스가 직장을 결정할 때도 플로이드의 의견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포함해서 네 곳으로부터 정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때 커누스는 플로이드에게 조언을 구했고 플로이드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추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로이드는 ‘나 같으면 스탠퍼드에 가겠다’고 했고 커누스는 그의 조언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스탠퍼드 대학교 측에 플로이드도 교수로 채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에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 있었던 플로이드는 스탠퍼드로 자리를 옮겼다.
커누스는 흐릿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강의 시간에 늦을 것 같았다. 플로이드에 관한 특별 강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는 풀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 듯싶었다. 플로이드와 주고받았던 서신과 플로이드가 도움을 준 책을 중심으로 풀어갈 생각이었다. 컴퓨터 과학에 남은 플로이드의 유산이 얼마나 큰지를 학생들이 알아만 준다면 그것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