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문이 희끗하게 보였다. 어두컴컴한 방에서는 텁텁한 먼지 냄새가 났다. 학교 한구석에 이렇게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램슨은 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건너편 문을 노려보았다. 여기서 그냥 문을 닫고 돌아서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저 건너편까지 가서 굳이 확인을 해보아야 할지, 그는 잠시 고민했다.
동부에서 자란 그에게 서부는 일단 따뜻해서 좋았다. 10월이면 동부 지역에서는 벌써 찬 바람이 불고 성미 급한 곳에는 첫눈이 잔디를 덮기 시작했을 텐데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햇살은 여전히 여름을 머금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린스턴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떨어져서 그 대안으로 버클리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렴 어때. 그에게는 그저 신나는 일이 필요했다.
마침 1964년 추계 합동 컴퓨터 학술대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램슨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다뤄봐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날씨도 좋은데 그런 행사를 빠질 수는 없었다.
거기서 스티브 러셀과 마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와는 MIT에서 잠시 일할 때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러셀은 반갑게 아는 척을 하더니 램슨에게 지금 어디에 다니는지를 물었다. 램슨은 버클리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러셀은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피터 도이치는 요즘 뭐 하고 지내?”
“누구요?” 램슨에게는 금시초문인 이름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램슨의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본 러셀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클리 대학교 컴퍼스 내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컴퓨터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디로 가면 그 컴퓨터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코니 홀은 버클리 캠퍼스의 북동쪽 구석에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코니 홀은 공과대학 건물이어서 물리학도였던 램슨은 이 건물에 올 일이 없었다. 건물 정문에 도착한 그는, 러셀이 알려준 대로 건물 밖을 돌아 남동쪽 모서리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말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면 작은 로비가 나오고 다시 작은 문이 나올 것이라고 러셀은 말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문의 손잡이를 램슨은 천천히 비틀어보았다. 오호라.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딘 램슨의 앞에는 작은 로비를 지나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램슨은 열었던 문을 등 뒤에서 살며시 닫고 천천히 반대편 문으로 갔다. 러셀이 알려주길, 이 문을 열면 다시 커다란 방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문 하나를 지나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램슨은 다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정말로 커다란 방이었다.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텁텁한 먼지 냄새를 맡으며 램슨은 어두컴컴한 방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키며 세 번째 문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문이 열리자 웅웅거리는 소리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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