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은 와이드너 도서관을 사랑했다.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들었고 값을 따지기 어려운 그 어마어마한 컬렉션의 가치를 애정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 사이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반질반질하게 청결함을 자랑하는 대리석 복도가 그를 반겼고, 반짝반짝 광을 낸 금색 난간이 붙어 있는 계단을 오르면 자연 채광이 환하게 비추는 넓은 독서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3층 높이에 이르는 아치형 지붕까지 탁 트여 있는 독서실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나란히 줄지어 배치되어 있었고, 늦은 시간에도 조용히 뭔가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하버드의 자랑이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담긴 이 건물은 고풍스러운 겉모습만 자랑이 아니었다. 지하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서고에는 하버드의 수재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수많은 책과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때 최초의 금속 활자본으로 알려졌던, 구텐베르크의 성서 인쇄본도 그중 하나였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마빈의 발걸음은 총총했다. 어제 발견했던 책에서 느꼈던 흥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멀리 운동장에서는 무슨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지 호루라기 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빈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마빈은 고등학교 때 학교 레슬링 팀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가 좋아했던 수학 선생님이 레슬링 팀 코치를 겸했었다. 처음에는 레슬링이 재미있었다. 마빈은 그가 속한 체급에서 상위 그룹에 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한 단계 높은 체급으로 다시 배정되었다. 몸무게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체급에서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는 하위 그룹으로 떨어졌다. 재미가 없어졌다. 레슬링에 대한 열정만 식은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스포츠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특정 신체 능력이 2% 정도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기 위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기장에 모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농구 경기에서 어떤 팀이 2점 차이로 이겼다고 했을 때 그 점수 차이는 통계적으로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그런 승리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었다.
마빈은 서가의 책꽂이에 붙어 있는 분류 기호를 훑기 시작했다. 어제 발견했던 책의 분류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분류 번호를 몰라도 찾을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적 생물리학Mathematical Biophysics>”이라는 책이었다. 생물리학에 관한 많은 논문과 글을 모아 놓은 이 책에서 그는 아주 흥미로운 장Chapter을 발견했다. 1940년대 초반에 맥컬럭과 피츠가 발표했던 신경망neural network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맥컬럭과 피츠는 인간의 신경망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이것이 명제 논리학propositional logic에 사용될 수 있음을 보였다.
마빈은 전자식 컴퓨터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특히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하워드 에이컨 교수가 Mark I이라는 기계 전자식 컴퓨터를 개발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인간의 뇌 구조를 컴퓨터의 기본 원리에 접목하는 연구가 있었다니! 마빈은 어제 책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를 대신할 인공지능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다행히 책은 어제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빈은 책을 들고 독서실로 나왔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독서실의 높은 천정으로 증발하여 날아갔다. 그는 어느 테이블에 앉을지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비어 있는 테이블을 찾아 그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제 흥미진진한 모험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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