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바바라의 11월 해변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일이면 12월이지만 여전히 햇볕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면 잠깐 잊고 있던 겨울의 차가움이 공격해오리라는 것을 커누스는 알았다.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는 물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적이 드문 모래사장의 한편에 놓인 파라솔 밑에 누워 호젓함을 즐기는 것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표였다.
올해는 정말 미친 해였다. 지난 몇 년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특히나 1967년 올해는 정말 미쳤다고 해야 옳았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것일까? 올 초부터 그는 미친 듯이 일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좋아서 그렇게 미쳐 있었다. 오른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며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위에 구멍이 날 때까지 신나게 일했지.’
커누스는 올해 벌어졌던 일들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2월에는 속성 문법attribute grammar에 빠져 있었고, 3월에는 피터 벤딕스와 함께 ‘리덕션reduction‘ 문제와 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4월에는 유럽을 휘젓고 다녔다. 그가 자문을 하고 있는 버로우즈 사에서 개발한 SOL 언어를 소개하기 위해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해야 했는데, 가는 길에 파리와 그레노블을 들러야 했다. 전부터 알고 지냈던 그곳의 교수들이 공동 관심사를 토론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작년에 탈고했던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세계> 1권이 그의 교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세계> 2권을 완성해야 하는 의무가 그를 계속 압박했다. 그뿐인가? 집에 귀가하면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저녁을 먹이는, ‘아빠’의 의무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편집자로 일하는 여러 논문지들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그의 몸은 5월을 넘기지 못했다.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그에게 당직 의사는 ‘위궤양’이라는 병명을 알려주었다. 그의 위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잠시 그는 손목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벌써 시곗바늘은 4시를 넘어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 발표장에서는 오늘의 마지막 발표가 진행 중일 것이다. 원래의 그였다면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해변에 나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오로지 휴식을 위해 여기에 왔다. 강의, 논문, 편집. 이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된 시간이 필요했다. 위궤양으로 몇 주간의 휴식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미 약속되어 있던 행사와 강의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6월에는 코펜하겐에서 여름 학기 특별 강의를 했고, 바로 영국으로 건너가서 옥스퍼드의 학술대회에 참석해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세계> 2권 집필을 계속하면서 강의를 준비했다.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그는 폭풍이 지나갔음을 느꼈다. 그동안 맡고 있던 열두 곳의 편집자 자리는 모두 내려놓았고, 일정한 취침 시간을 가지도록 생활 습관도 바꾸었다. 무슨 부탁이든 일단 ‘오케이’라고 승낙부터 하는 버릇도 고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다 잡아가면서 그는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했다. 그는 수학을 좋아했지만 컴퓨터 과학이 더 마음에 끌렸다. 수학 관련 학술대회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갈수록 주제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마침 몇몇 대학에서 그에게 좋은 자리를 제안해왔다. 현재 몸담고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뿐만 아니라 하버드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등이었다. 모두 훌륭한 곳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과연 어디를 가면 컴퓨터 과학을 재미있게 연구하며 살 수 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