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카프​*​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정리를 자동으로 증명하는 것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처음에는 소규모 문제에서 성공을 보이며 크게 고무되었지만, 조합 폭발 현상의 심각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결국은 환상에서 벗어나곤 했다.

1985년 튜링상 수상 강연 중에서​1​

인터뷰 장소는 아주 소박했다. 작은, 너무 작아서 머그컵 두 잔을 올려놓으니 꽉 차 보이는 작은 테이블을 두고 간이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대학 연구소가 주관하는 인터뷰이니 거창할 이유가 없었다. 딕은 그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인터뷰를 해 왔지만 여전히 긴장되었다. 좋아서 그리고 재미있어서 해 온 작업들을 인정받는 일은 기분 좋았으나 그에게 붙여지는 미사여구들은 여전히 어색했다. 그런 찬사를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받아서 즐기기는 쉽지 않았다. 훌륭한 동료와 선후배, 제자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인터뷰는 사이먼스 연구소Simons Institute가 주관하는 다섯 번의 특별 인터뷰 중 마지막 차례였다. ’80년대의 버클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튜링상을 수상한 버클리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 다섯 명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샤피 골드바서를 시작으로 마누엘 블럼, 실비오 미칼리, 앤드류 양을 거쳐 자신이 마지막이었다.​2​

진행을 맡은 러셀 임팔리아초 교수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은 그는, 어떤 질문을 받을지 예상해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인터뷰의 시작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끌어내는 데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설명을 해볼까? 그의 머릿속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머니, 대학원을 어디로 진학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딕은 답답한 마음을 어머니에게 드러냈다.

“저는 돈을 벌기보다는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수학이 저에게 잘 맞는지 자신이 없어요. 학부에서 배운 과목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요즘 각광받는 분야는 잘할 자신이 없네요. 동기들을 보면 너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서 제가 소질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 졸업을 앞둔 딕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하고는 싶은데, 가서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항상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져 위축되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가 어렸을 때 일찍 월반을 한 탓에 중고등학교 때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였던 탓에 체육, 그림, 목공 등의 과목에서는 뒤로 밀리기 일쑤여서 동기들과 있을 때도 주눅이 들어 있곤 했다.

“얘야. 굳이 수학과로 진학할 필요는 없단다.” 그의 어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학부 과목 중에서 네가 좋아하고 잘했던 것들을 생각해 봐.”

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물론 재미있고 결과도 좋았던 과목이 있기는 했어요. 솔직히 확률 과목은 제가 동기 중에서 제일 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틀리 교수님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죠.”

“그러면 대학원에 가서 그 분야를 공부하면 되지 않니?”

어머니의 의아스러운 반응에 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정통 수학과가 아니라구요. 계산 연구실이라는 새로운 연구실인데 거기서는 컴퓨터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컴퓨터라니? 그게 뭐지?”

“그것은 복잡한 수식을 자동으로 계산하거나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입니다. 수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이제는 그의 어머니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딕은 어머니가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을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그 연구실로 가거라. 데이터 처리가 미래를 여는 열쇠란다.”​3​


부산하던 주위가 정리되더니 강한 조명이 켜졌다. 딕은 60년 전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큐 사인이 들어오자 진행을 맡은 러셀 교수가 인사말을 시작했다. 덥수룩한 구레나룻 수염 사이로 긴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간단하게 소개 겸 인사를 마친 러셀 교수가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해서 컴퓨팅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었나요?”

딕은 60년 전에 어머니가 해 주신 조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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