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는 둘 다 인간의 지평을 넓혀준다.

지식은 컴퓨터를 낳았고 지혜는 젓가락을 낳았다.

1966년 튜링상 수상 강연 중에서​1​
앨런 펄리스​*​

앨런 펄리스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창 밖을 보았다. 멀리 분주히 걸어가는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생긴 컴퓨터 과학과 학생일까? 펄리스는 잠시 호기심이 동했다. 작년에 신설한 컴퓨터 과학과는 첫 대학원생을 받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방금 지나간 학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가 카네기 기술 대학(Carnegie Institute of Technology)에 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퍼듀 대학교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모교인 이곳으로 온 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막 독립된 분야로 발돋움하려는 컴퓨터 과학은 그에게 도전이자 즐거움이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만 해도 컴퓨터는 말 그대로 계산하는 사람을 의미했는데 20년이 조금 지난 지금은 계산을 자동으로 해주는 거대한 기계를 지칭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컴퓨터는 전쟁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아가면서 다양한 용도들이 모색되고 있었다. 그는 매릴랜드의 탄도 연구소에서 보았던 그 거대한 기계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했다. 수 만개의 진공관으로 만들어졌던 ENIAC에 압도되었던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ENIAC의 후손들은 이제 더 작고 더 강력해져서 경쟁적으로 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분야는 본 적이 없었다.

펄리스는 한없이 뻗어만 가던 생각을 퍼뜩 다 잡았다. 이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방금 전에 받은 전화통화에서, ACM의 담당자는 그가 앨런 튜링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솔직히 혹시나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어떤 이들이 컴퓨터의 발전에 기여했는지를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 쟁쟁한 인물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을 제치고 자신이 첫 수상자가 되다니 큰 영광이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미안함과 난감함이 밀려왔다. ACM의 담당자는, 수상 강연이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료와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첫 튜링상 수상자로서의 부담감이 밀려들었다.

펄리스는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강연의 내용은 튜링상 선정 이유에 부응해야 할 듯 싶었다. 그가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는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과 컴파일러 제작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알골ALGOL 언어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높이 산 듯했다. 펄리스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첫 튜링상 수상 강연이라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는 멋지게 시작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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