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흐린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언제나처럼 캘리포니아의 코발트색 하늘은 청명하고 선명했다. 하지만 테드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생사를 건 전쟁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전쟁 중 잠시 맛본 미국의 생동감은 그를 대서양 건너편으로 이끌었다.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혈혈단신으로 미국 땅을 밟은 영국 젊은이에게 좋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마침내 문을 열어준 곳은 IBM이었다.
기회의 땅이라고 여겼던 미국이 싫어질 때도 있었다. 매카시 광풍이 몰아칠 때는 한마디로 정나미가 떨어졌었다. 그래서 미국을 떠나기도 했었다. 캐나다에서 새 출발을 한 그를 다시 끌어당긴 곳도 IBM이었다.
그는 IBM이 좋았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고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그곳에서 컴퓨터를 설계했다. IBM의 배려로 그는 박사 과정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IBM이 그를 실망시키고 있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모델을 회사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론을 차곡차곡 세우고, 논문을 발표하고, 지지자들을 끌어모았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모델이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 비해서 명백한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단점만 쳐다보았다. 지난 20년간 IBM은 새로운 컴퓨터 이론을 적극 받아들였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시스템 360 모델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이제 회사는 성공에 안주하는 듯 보였다.
이유는 뻔했다. 이미 시장에서 확실하게 이익을 거두고 있는 IMS 데이터베이스를 흔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잘 나가고 있는 사업에 훼방을 놓을 수도 있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는, 재무제표에 민감한 이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 저 혼자 타들어 가고 있던 담배에서 재가 뚝 떨어졌다. 테드는 바지에 묻은 담뱃재를 털어냈다. 여기서 정리를 하는 것이 맞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기에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모델이 너무 아까웠다. 아니. 기존의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문제가 많았다. 그걸 알면서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테드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부를 설득할 수 없다면, 외부를 설득하자. 고객이 원한다면 회사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깊게 들이마신 담배 연기가 폐부를 훑고 나와 하늘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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