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위키피디아

컴퓨터의 역사를 보면, “어떻게”라는 한쪽 끝에서 “무엇을”이라는 다른 쪽 끝으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이동해 왔다.​1​
에드 파이겐바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똑같을 수 있을까? … 그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보다 나을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다고 하겠다.​2​
라지 레디

1994년 튜링상 수상 강연 중에서

피츠버그의 아침은 상쾌했다. 겨울에는 혹독하기로 유명했지만 이제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하는 길목에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쨍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청명한 아침이었다.

어제 하루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저께 늦은 비행기로 도착한 그를 카네기 멜런의 세 교수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끌고 다녔다. 앨런 펄리스, 허버트 사이먼, 앨런 뉴얼. 모두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아닌가? 도대체 파이겐바움 교수가 뭐라고 소개했길래 이렇게까지 환대하는 걸까? 라지는 이를 닦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레디 교수.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는 건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파이겐바움 교수가 어느새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소리도 없이 옆에 앉아?”

그러자 파이겐바움 교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리. 나는 그냥 와서 털썩 앉았는데 자네가 생각에 빠져서 못 들은 거지.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건지 빨리 말해보시지.”

레디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이 무안했고 자신이 하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아도 될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즘 고민이 있어.”

파이겐바움 교수는 웃으면서 눈으로 말했다. ‘빨리 말해봐.’

“파이겐바움 교수도 알겠지만. 나는 스탠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스탠퍼드에서 교수를 할 수 없지 않나, 그게 학교의 방침이니. 다행히 학과의 배려로 조교수로 일하고는 있지만 정년을 보장해 주지 않는 곳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다른 학교에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6개월 전쯤에 버클리에서 정년을 보장해 주겠다는 언질을 받아서 지원서를 냈다네. 그런데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확답이 안 오고 있어서 답답해 죽겠어.”

레디 교수의 말을 들은 파이겐바움 교수의 얼굴에 웃음기는 가셔 있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고민이었다. 카네기 멜런에서 학위를 받은 파이겐바움 교수는 버클리에서 잠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스탠퍼드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가 스탠퍼드에 교수로 왔을 때 레디 교수는 이제 박사 2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허물없이 지내왔다.

“내가 있어봐서 아는데 그 동네가 좀 원칙대로 하는 분위기야. 그래도 6개월은 너무 했구먼. 안 된다면 빨리 안 된다고 해줘야지 다른 곳을 알아보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집에 가면 딸아이가 이제 곧잘 뛰어와서 나를 반긴다네. 그 아이를 볼 때면 빨리 안정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파이겐바움 교수는 말없이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씹는 데 집중했다. 레디 교수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입을 닦았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레디 교수에게 파이겐바움 교수가 입을 열었다.

“혹시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 관심 있나? 내가 뉴얼 교수에게 채용 계획이 있는지 한번 물어보겠네.”


2박 3일의 일정은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라지는 정리한 짐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옆에 털썩 앉았다. 비행기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고 호텔 체크아웃 시간도 여유가 있었다.

이제 6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그의 미국 생활은 항상 캘리포니아 중심이었다. 미국의 동부 지역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제 하루 돌아본 카네기 멜런은 그의 기대 이상이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인공 지능 분야에서 카네기 멜런의 교수들은 욕심과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연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른 젊은 잠재적 후보들에게 모두 똑같이 제공되는 의례적 과정일지도 몰랐다. 과연 카네기 멜런은 얼마나 빨리 그에게 제안을 해올까?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라지는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일어났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은 전화기를 그는 움켜쥐었다.

“레디 교수. 잠은 푹 잘 잤습니까? 어제 우리가 너무 레디 교수를 끌고 다녀서 아마 굉장히 피곤했을 겁니다.”

하루 만에 귀에 익어버린 뉴얼 교수 목소리였다.

“네. 아주 잘 잤습니다. 늦잠을 잘 뻔했습니다. 하하하.”

“다행이군요. 멀리서 여기까지 와주셔서 우리 과의 모든 교수들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를 대표하여 레디 교수에게 제안하고자 합니다. 우리 과의 교수로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년 교수로 모시고 싶습니다. 레디 교수께서 싫다고 말하시면 모든 교수들이 크게 실망할 겁니다.”

라지는 잠시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빨리 제안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너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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