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스 하트마니스(좌)와 리처드 스턴즈(우)​*​

물리학은 ‘무엇’에 초점을 더 맞추는 반면에 컴퓨터 과학은 ‘어떻게’에 더 집중한다.​1​
(유리스 하트마니스)

내게 가장 흥미로운 수학이란, 현실 세계에 대해 뭔가 알려주는 수학이다.​2​
(리처드 스턴즈)

1993년 튜링상 수상 강연 중에서

드디어 완성이다. 스턴즈는 타자기에서 종이를 빼내서, 책상 한쪽 끝에 모아 놓은 종이 더미 위에 올려 놓았다. 몇 달을 초고 작성에 쏟아부었더니 홀가분하다는 느낌보다는 진이 빠진 느낌이 더 강했다. 아무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게 되어 그는 기뻤다. 그는 몸을 돌려 소리쳤다. “끝났어요. 하트마니스.”

몇 자리 건너 앉아 있던 하트마니스가 시선을 주며 웃었다. “그러면 한잔해야지.”


술집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기는 했다. 벽에 붙은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생맥주를 시켰다. 일단은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싶었다.

“시간이 참 빨리 가네요.” 케첩을 듬뿍 올린 감자튀김을 입에 넣으며 스턴즈가 말했다.

“일이 재미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약간은 모호한 미소를 띠며 하트마니스가 말했다.

“그런가요? 하하하.” 스턴즈는 하트마니스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궁금했다. “아무튼 몇 년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엮어낼 수 있어서 정말 보람 있습니다.”

“맞아. 내 이름이 금박으로 박힌 책이 사람들 손에 들려 있다고 생각해 봐. 근사하지.” 하트마니스는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웃으며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두 사람은 제너럴일렉트릭 연구소 소속이었다. 하트마니스가 몇 년 앞서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는 오토마타에 관심을 가졌고 이와 관련된 논문을 썼는데, 얼마 후 여름 인턴으로 잠시 근무하게 된 스턴즈가 그 논문과 관련된 일을 했다. 스턴즈는 게임이론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었지만 오토마타에 흥미를 느꼈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제너럴일렉트릭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오토마타 연구를 진행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고 마침내 책까지 함께 집필했다.


시간이 좀 지났는지 술집에는 어느새 비어 있는 테이블이 거의 사라졌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홀을 채우고 있었다. 스턴즈는 손수건으로 입꼬리를 훔치면서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글쎄.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하트마니스는 팔짱을 끼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맥주잔을 기울였다.

“요즘. 뭐 재미있게 읽으신 거 없어요?”

“음.”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하트마니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최근에 섀넌 박사의 정보 이론 논문을 읽었는데 인상적이었어.”

“어떤 점에서요?”

“뭐. 그 이론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정보라는 추상적인 객체를 정량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더군. 생각해 봐. 정보라는 것은 물리 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대상이잖아. 그런 것을 정량화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

스턴즈는 술잔을 든 채로 조용히 하트마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계산 작업을 해야 하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우와… 어렵다는 걸 어떻게 수식화할 수 있을까요?” 스턴즈는 강력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글쎄. 그걸 알아내야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지. 완벽하게 수식으로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난이도를 가지는 부류끼리 묶는 방법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같은 알고리듬이더라도 어떤 기계에서 돌리냐에 따라 성능 차이가 있는데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맞아. 그러니까 이런 것은 추상적인 컴퓨터를 가정하고 그 위에서 따져야 할 것 같아.”

갑자기 하트마니스와 스턴즈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두 사람은 함께 술잔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막 끝마쳤던 그 책이 바로 추상적인 컴퓨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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