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과학자로서의 삶

젊은 시절의 모리스 윌크스​†​

모리스 빈센트 윌크스(Maurice Vincent Wilkes)는 1913년 6월 26일에 영국 중부의 스타포드셔Staffordshire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전기 전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0대 때 광석 라디오를 만들어 보았고, Wireless World 잡지를 읽었으며, 무선 아마추어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2​

193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수학을 전공했다.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캐번디시Cavendish 연구소에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나는 무선 통신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지구의 이온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캐번디시 연구소에는 아주 잘 나가는 이온층 연구 그룹이 있었죠… 나는 수학 우등생이 되어서 캐번디시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전문적인 수학자가 될 생각이 없었어요. 수학에 재능이 있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캐번디시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수학 우등생이 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 시절에 비하면 좀 중요성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학 우등생이 되면 캐번디시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3​

1935년 10월에 그는 캐번디시 연구소의 연구 학생이 되었고 무선 장파low frequency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1936년 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된다. 맨체스터 대학교의 수리물리학 교수이자 당시 컴퓨팅 전문가였던 더글라스 하트리(Douglas Hartree) 교수의 강의에 참석한 것이다. 그는 MIT의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 교수가 발명한 “차분 분석기Differential Analyzer“를 알게 되었다.

하트리 교수는 차분 분석기를 메카노Meccano(영국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조립식 장난감 부품)로 구현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이론 화학과 교수였던 존 레나드-존스(John Lennard-Jones)가 이의 복제품을 만들었다. 레나드-존스 교수는 1937년 초에 컴퓨팅 연구소를 세웠고 윌크스는 10월부터 그곳에서 부소장으로 일했다. 연구소의 정식 이름은 수학적 연구소Mathematical Laboratory였다.​4​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컴퓨팅 연구소는 군의 지휘에 놓였다. 윌크스는 레이더와 조직 운영 관리와 관련된 일에 배치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10월에 그는 대학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제는 수학적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수학적 연구소는, 음 … 그러니까 … 그건 원래 컴퓨팅 연구소나 컴퓨터 연구소로 이름을 지었어야 했는데 누가 ‘수학적’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죠. 후에 이름을 바꿨습니다.

수학적 연구소에서는 수학을 연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3​

1946년 5월에 당시 영국에서 기계식 컴퓨팅의 선구자였던 콤리(L.J. Comrie) 박사가 그의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그의 운명을 바꿀 논문을 건네주었다. 존 폰 노이만이 쓴 <EDVAC에 관한 보고서 일차 초안First Draft of a Report on the EDVAC>​5​의 사본이었다. 저장형 프로그램 방식 전자식 컴퓨터의 기본 개념을 최초로 정리한 바로 그 논문이었다. 잠도 잊고 논문을 읽어내려간 그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미국에서 그에게 전보가 날아들었다.​4​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무어 공대에서 진행하는 컴퓨터 설계 여름 특강에 초대된 것이다. 그는 왜 자신이 28명의 제한된 수강생에 포함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고 그는 특강이 절반이나 지난 8월 중순이 되어야 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퀸 매리Queen Mary 호를 타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배에서 자신이 만들 컴퓨터의 설계를 시작했다.


EDSAC(Electronic Delay Storage Automatic Calculator)라는 이름의 이 컴퓨터는 1947년 초에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가서 1949년 5월 6일에 첫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비록 최초로 저장형 프로그램을 실행한 전자식 컴퓨터의 타이틀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베이비 컴퓨터에 뺏겼지만,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수준으로는 최초로 간주된다.

EDSAC​‡​

EDSAC을 만든 윌크스는 이 컴퓨터를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작성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최초로 프로그래밍을 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던 고민이었다. 컴퓨터를 직접 만든 본인도 기계어를 다루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는 컴퓨터 기계를 만드는 일보다 프로그래밍에 초점을 맞추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EDSAC의 프로그래밍 방식에 대한 설계를 연구 학생이던 데이비드 휠러(David Wheeler)에게 맡겼다. 휠러는 최초로 어셈블러를 구현했고 서브루틴 방식을 고안했다. 윌크스와 휠러는 또 다른 연구 학생이었던 스탠리 길(Stanley Gill)과 함께 1951년에 프로그래밍에 관한 최초의 교재를 출간했다.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램 준비하기The Preparation of Programs for an Electronic Digital Computer>​6​라는 제목의 이 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본 서적이 되었다.

윌크스는 하드웨어 설계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EDSAC2를 준비하면서 그는 프로세서Processor의 설계를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이크로프로그래밍Microprogramming 기법​7​을 고안했다. 이 방법은 프로세서의 내부 논리 설계를 크게 단순화시켜 주었다. 마이크로프로그래밍 기법은 1960년대 초에 IBM이 System/360 설계에 도입한 후 프로세서 설계의 기본이 되었다.

윌크스는 1980년에 67세로 은퇴할 때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컴퓨터 연구소(수학적 연구소가 1970년에 이름을 바꿈)의 소장으로 일했다. 그의 관심사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했다. 1960년대에는 시분할 시스템, 1970년대에는 컴퓨터 네트워크에 관심을 쏟았고 강연과 국제 활동을 통해서 컴퓨터 기술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은퇴 후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기업체의 자문역으로 활동했던 그는 2010년 11월 29일에 케임브리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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