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배비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는 최초의 자동 계산 기계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때 조용히 잊혀졌던 찰스 배비지를 다시 사람들 앞에 꺼내 놓은 이가 모리스 윌크스이다.
18세기 찰스 디킨즈 시대에 살았던 찰스 배비지는, 산업 혁명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영국에서 주목받던 수학자였다.13 그는 천문력을 만들기 위한 수학 계산 작업의 고단함을 없애기 위해서 차분엔진Difference Engine이라고 이름 붙인 자동 계산 기계를 제안했다. ENIAC과 마찬가지로 다차 방정식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기계였다. 구조적으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기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는 완성되지 못했다.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은 동일한 부품을 쉽게 대량 생산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8세기에 잠시 반짝 주목을 받았던 찰스 배비지는 영국 왕립 협회의 흑역사로 남았고 조용히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전자식 컴퓨터가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찰스 배비지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었다. 윌크스에게 배비지라는 인물을 소개한 이는 하트리(Douglas Hatree)였다. 그는 배비지가 작성한 원고들을 윌크스에게 전해주었다.
윌크스는 배비지에 관한 글들을 여러 번 발표했고 덕분에 배비지가 재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배비지에 대한 윌크스의 평가는 세간의 평가와 조금 다르다. 배비지는 차분엔진을 제작하는 와중에 새로운 구조의 계산 기계를 제안했다. 해석엔진Analytical Engine이라고 부르는 이 기계는 프로그램 코드를 실행하는 범용의 계산 기계였다. 프로그램 코드는 당시 직조기의 패턴 설정용으로 사용되던 펀치 카드로 입력받는 식이었다. 배비지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방식을 고안했고 이를 에이다 러브레이스 에이다(Ada Lovelace)에게 알려주어 그녀로 하여금 일종의 테스트 프로그램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런 사연으로 인해서 에이다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런데 윌크스는 배비지의 해석엔진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배비지가 저장형 프로그램의 개념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단정지으면서 배비지로부터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크스가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찰스 배비지를 부각시키려 노력한 것은, 미국에 넘어간 컴퓨팅의 주도권을 아쉬워하며 영국의 공을 드러내고 싶었던 속내가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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